‘시지프스의 돌’을 함께 굴려갈 우리들-사회적기업 창업팀 워크숍을 다녀오며
7월 8일 태풍 ‘너구리’ 국내 상륙 소식과 함께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4기 창업팀과 함께 떠나는 2박 3일 워크숍 일정을 몹시 기다려왔지만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끊임없이 망설였던 이유는 태풍 너구리 때문도 아니요, 일 때문도 아니요, 배에 뚫린 네 개의 구멍 때문이었습니다.
워크숍을 떠나기 2주 전 안타깝게도 쓸개 제거를 위한 복강경 수술을 받았고, 혹시나 비행기를 타면 안 된다고 할까봐 의사선생님께는 물어보지도 않고 ‘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제주까지 가는 1시간 가량의 시간 동안 혹시나 수술 부위가 터지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을 했으나 무사했습니다. 게다가 너구리, 너구리 해대던 일기예보와 달리 햇살 뜨거운 제주 땅을 밟고 보니 ‘역시 좋은 일 하겠다고 모인 우리 창업팀들의 순수함이 하늘을 감동시킨 것인가!’라며 감탄 했습니다.
태풍 예보 속 행운과도 같았던 맑은 날씨를 뒤로 하고 우리가 가장 먼저 간 곳은 ‘제주 사회적기업 경영연구원’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이목구비가 부리부리하신 팀장님의 열정적인 강의로 제주도의 사회적기업 현황에 대해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나중 뒤풀이자리에서 알게 됐는데 그 분은 작년 3기 워크숍 때 '참참참 게임'에서 창업팀 전체를 올킬 시킨 게임의 고수였습니다. 우리 사회연대은행 팀장님과 RM님들만큼이나 열심히 제주 사회적기업들을 육성한 결과 2013년까지 총 83개의 사회적기업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대단합니다.
첫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언제 태풍이 올지 모르니 맑을 때 바다구경을 하자는 아주 현명한 진행이었습니다. 올해 들어 처음 보는 바다였는데 수술 상처 때문에 물속에도 못 들어가고 말 그대로 구경만 했습니다.
이번 워크숍 안내를 맡은 ‘이어도사나여행사’ 팀장님이 옷이 젖으면 버스에 못 탄다고 신신당부를 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물놀이를 즐겼습니다. ‘글리뮤지컬합창단’의 모녀님이 앞장서 물놀이 시간 연장을 요청했고, 덕분에 예정됐던 오후 일정을 모두 연기하고 맘껏 제주 바다를 만끽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나는 물에 발도 담그지 못한 채 뙤약볕에 있자니 점점 고통스러워서 잠시 에어컨 빵빵한 커피숍으로 피신해 나름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케이디아스페라’ 팀원인 중남미에서 온 보라 양과 보낸 오붓한 시간이었습니다.
둘째 날 태풍 너구리가 제대로 왔습니다. 제주도에서는 비가와도 우산이 필요 없다고 합니다. 바람이 세서 우산이 버텨내지를 못할 뿐만 아니라 들이치는 비를 온몸으로 맞아야 하니 우산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입니다. 말로만 들었던 그 제주 비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마을설립 박물관인 ‘조랑말 박물관’ 옥상은 가시리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360도 시야로 볼 수 있는 멋진 곳입니다. 바람에 옷이 날리고, 머리가 산발이 되어도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바람샤워’를 한 듯 개운하고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날씨 탓에 조랑말체험공원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지금종 관장님의 강의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습니다. 5년 전 제주로 내려와 조랑말체험공원을 만든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나도 철원에 이렇게 잘 만들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울컥도 했다가 머릿속이 복잡도 해졌다가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철원에서 새터민들과 함께 주말농장을 하겠다는 처음의 계획이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지금은 새터민들과 함께 하는 통일캠프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입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철원 땅에 들어가서 그곳 주민들과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잘 할 수 있을까? 여전히 고민은 많습니다. 하지만 강의를 들으면서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 것은 사실입니다. 아자아자!
비가 너무 많이 오면 원래 계획됐던 사회적기업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실내 프로그램으로 교체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아쉬웠는데 이런 마음이 전달됐는지 제주 사회적기업 대표님들의 도움으로 방문 일정을 그대로 진행하게 됐습니다. 추첨으로 여섯조를 나눠 각자 할당된 사회적기업을 방문해서 발표하는 일정이었습니다.
6조를 배정받은 나는 첫날 바닷가에서부터 인연이 있었던 ‘케이디아스페라’의 보라양과 정장희 대표 그리고 ‘강사테라피스트협동조합’의 김경희 대표님과 함께 움직였습니다.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한 ‘영농조합법인 생드르’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사실 방문해서 인터뷰했던 시간보다도 비바람을 뚫고 이동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악천후 속에서도 목표를 위해 의기투합했던 조원들에게 동지의식 같은 것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다른 조들도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4기 창업팀은 능력자들만 모인 것인지 다들 짧은 시간 안에 굉장한 결과물을 만들어냈습니다. 1등, 2등을 떠나서 태풍 속에서 진행된 이 프로그램 덕분에 더 돈독해지고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뒤풀이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고군분투했던 팀원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여담을 나누는 것을 보니 참 재미있고 신기했습니다. 이원태 팀장님이 이야기한 이번 워크숍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었나. 곁에 있는 사람들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워크숍 진행을 도와준 3기 창업선배님들과도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물놀이에서 ‘투 따봉, 원 삐끗’으로 그만 목을 다쳐서 내내 파스를 붙이고 다닌 ‘시네에그’ 대표님의 안타까운 사연도 술자리에서는 웃음을 자아냈고, 언제나 진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아트버스킹’ 대표님과 동갑친구 ‘엶엔터테인먼트’ 대표님과도 다음에 만나게 되면 더 반가울 것 같습니다.
1년 전 나와 같은 입장으로 제주 워크숍에 와서 하나, 둘 사업을 만들어가고 인큐베이팅 과정이 끝나고 나서는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파트너가 되어 알콩달콩(?) 지내는 선배들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아직은 내년 우리 4기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지만 멋지게 성장해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워크숍 전 ‘공유독서실’의 이완규 대표가 직원들 생각에 잠을 못 잔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더 얼굴이 안됐기에 물어보니, 이제는 잠이 안 오는 정도가 아니라 밥도 안 넘어간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제주 일정 마지막 날에 방문했던 ‘평화의마을’ 이귀경 대표님이 사회적기업을 하는 일은 ‘시지프스의 돌’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산꼭대기로 올려놓으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다시 힘들게 그 돌을 산꼭대기로 올려놓고, 그러면 또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그 길을 우리가 가고 있는 거구나....’ 이 험난한 길에 동참한 우리 4기 대표님들과 팀원분들에게 늘 행운이 따르길 빕니다.
글/정미현(창업팀 ‘우리들의 성장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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