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도 고단한 외국생활, 그리고... 광주예능영어학원
외롭고도 고단한 외국생활, 그리고... | ||
광주 예능영어학원(무지개가게 460호점) 고경미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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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어른이 되면 자신만의 꿈을 갖게 될 것이다. 나 또한 욕심이 많은 개인적인 성격 덕택에 철이 들었던 대학시절 부터 나 나름대로 누구보다 잘 살고 싶다는 꿈을 갖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책없이 꾸는 꿈은 무모한 행동과 더불어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을 만들 수 있는 것 같다. 대학시절 가벼운 마음으로 컴퓨터 학원 강사일을 했었다. 아마 그 때 였을 것이다. 내가 영어에 관심을 갖고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지금의 나를 만들게 된 계기는... 컴퓨터 안에 나와 있는 모든 단어와 프로그램은 영어로 되어 있어서 그것들을 이해하고 풀어낼 수 있으면 쉽게 프로그램을 짤 수 있다. 이런 계기로 난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마침 우연찮게 여행사 고위관리의 눈에 들어 여행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미국 비자 담당 파트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미국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져갔고 그곳에 대한 꿈이 똘똘뭉쳐 당시 내 머리 속에는 온통 미국으로 나가서 공부해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마침내 내 꿈은 이루어졌고, 이러한 순간을 맞이한 것은 내 앞에 나타난 어떤 남자를 택함으로써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미국에 도착하여 아이가 3명이 태어나도록 나는 내 선택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주어진 것들에 최선을 다하며 지냈다. 새벽잠을 설치며 아이들을 돌봤고 낮엔 학업에 매달렸다. 괴팍한 그 사람의 성격이나 모순된 행동에도 내 책임을 다하면 좋아지리라고 생각했었다. 막막하고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항상 내편에 계시는 하나님과 사랑스러운 세 아이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국에 있는 동생으로부터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하였으나 비행기 표 값이 없어 돌아갈 수 없을 만큼 가난했던 나는 가까스로 동생의 도움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많이 위독하셨고 엄마는 야윈 내 모습에 오열하며 우셨다. 그렇게 해서 7년의 외롭고도 고단한 외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친정부모님이 계셔서 맘은 훈훈했지만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에 바로 일을 시작해야 했다. 한국생활에 적응도 못한 아이들을 어린이집 종일반으로 보내야 했고 나는 바로 학원 영어강사일을 시작해서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한달을 버틸 수 있었다. 아이들을 대하는 일이라 하나하나 알아가는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상담을 통해 학부형들께 그러한 부분들을 알려 드리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강사에서 교수부장으로 일을 하며 학원일을 익히면서 아침에는 유치원 파견교사로, 오후에는 학원으로 일을 하면서 틈틈히 저축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을 놓고 늘 연구하고 기도했다. 아이들이 실생활에서 활용하며 영어를 자신있게 표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수 있게 해달라고... 아이들이 쉽게 머리 속에서 연상하여 영어로 표현하고 두려움 없이 정확한 표현을 하는 것을 볼 때는 뛸 듯이 기뻤다. 이젠 나의 아이들도 제법 잘 커서 공부도 잘하고 영어로 표현하는 것들도 잘 할 만큼 안정되었다. 그 힘들었던 시간들을 잘 버틸 수 있었던 건 아이들을 내가 책임져야만 했던 절박한 상황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그 상황들에 감사할 수 있다. 그리고 한순간도 내 꿈을 놓지 않고 내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기도하며 연구하며 가르치는 일에 게으르지 않을 것이다. 꺼져버릴 수 있었던 내 희망에 불을 붙여 주었고 부러진 날개에 희망의 바람을 불어 세상을 훨훨 날개해 준 삼성생명과 사회연대은행 관계자들에게 이글을 통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싶다. 그리고 내가 받았던 그 사랑과 은혜를 돌려줄 수 있도록 남은 시간들을 최선을 다하며 살겠다고 감히 약속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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