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변화 이야기

디자이너들이 일상을 바라보는 법, 그리고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 - ‘일상의 실천’

2013.12.02

디자인과 예술이라는 단어 옆에 사회적기업, 비영리단체라는 단어가 있다면 어떤가요?

아직 디자인과 예술이라고 하면 상위 문화라고 인식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정치, 사회, 문화, 환경 등 우리의 일상 전반에 걸쳐있는 현상들을 담아내는 것이 예술이고 디자인입니다.

누군가는 불편한 일상에 눈을 돌려버릴 수도, 모른 체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일상을 담담히 바라보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위하고 비영리단체와 사회적기업과의 다양한 작업을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분명하게 내뱉는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 실천’의 김어진, 권준호, 김경철 디자이너를 만나봤습니다.

 

▲'일상의 실천' 스튜디오 3인방

 

‘일상의 실천’ 스튜디오를 소개해주세요. 이름이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그냥 매일매일 작업을 꾸준히 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건데 어떻게 보면 '의미있는 디자인 작업을 하자'라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김어진, 김경철 디자이너 두 분은 이전 직장에서 디자인을 할 때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 때문에 ‘일상의 실천’ 스튜디오를 시작하시게 된 것으로 아는데요?

 

-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도 같은데, 개인적으로 디자이너는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몇몇 기업들은 디자인을 기업이나 제품의 이미지 세탁에 쓰이는 상업적 도구로 생각하죠. 디자이너도 어떤 사회적 맥락이나 의미에 관계없이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맞게 그저 예쁘게만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게 되는 게 싫었어요.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작업을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좀 더 주체의식을 갖고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일상의 실천’ 스튜디오에서 추구하는 디자인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 추구하는 디자인이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작업을 하려고 한다는 게 더 맞겠죠. 사회적기업이든 일반기업이든 클라이언트에 상관하기 보다는 ‘우리가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가’가 우선이에요. 이윤만을 보고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희 나름대로 작업을 선택하는 기준을 가지고 디자인을 하고 싶어요.

 

작업에 필요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으시나요?

 

- 보통 디자이너들은 그래픽 작업을 할 때 컴퓨터나 노트북 화면 안에서 이미지를 만들어요. 저희는 좀 다른 시도들을 해보려고 많이 노력해요. 예를 들어 녹색연합에서 격월로 발간하는 소식지 녹색희망 중 2013년 11월 녹색희망 표지 같은 경우 그린 컨퍼런스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어서 그린 컨퍼런스의 로고를 활용했어요. 로고를 직접 물성으로 제작한 후 빛과 그림자를 도구화시키고 접었을 때와 펼쳤을 때를 비교해서 ‘소통’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거든요. 기존에 했었던 것들에 대한 반복이 아니라 무언가 더 현실적인 공간이나 사물을 찾고 작업에 활용해보려는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린 컨퍼런스 메인 표지

 

과거에 하셨던 작품들을 보면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여럿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제가 했던 작업들의 공통점은 사람이 나오는 작업이라는 거예요. 넓게 보면 어떤 사회의 흐름을 반영하는 작업을 했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탈북여성의 예를 가져오고, 용산의 예를 가져왔는데, 사실 그건 난민에 대한 작업이고 철거민에 대한 작업이거든요. 철거민은 용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다 있고 지금도 있고 과거에도 있었던 사람이에요. 난민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그런 큰 이슈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하나의 작은 예를 이용해서 조금 더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조금 진부한 표현인데, 작업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여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처럼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을 소재로 작업할 때, 디자이너로서 주의해야할 점이 있나요?

 

- 일반적인 작업과 크게 다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도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에 어떤 도구가 맞을지 말이에요. 용산 참사를 다룬 <저기 사람이 있다>의 경우 목탄이라는 소재를 쓴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처럼 올바른 도구 사용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죠.

 

NGO나 문화예술단체와 많은 작업을 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사실 사회적기업과 작업을 진행한다고 해서 저희가 무료로 봉사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사회적기업도 엄연히 이윤추구를 하는 기업이잖아요. 우리의 취지와 맞는 활동이 있다면 작업을 해드리고 합리적인 보상을 받을 뿐이에요. 사회적기업이나 NGO단체들을 위해서만 일을 하는 스튜디오는 아니라는 거죠. 다만 그분들과 가치를 공유하고 나누는 차원에서 사회적기업과의 협업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협업사례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릴게요.

 

- 탈북여성연대와 한살림과의 작업이 기억에 남아요. 탈북여성연대의 경우 준호씨가 <Life>라는 작품을 했던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는데 저희가 스튜디오를 시작하면서 다시 리플릿 작업을 하게 됐거든요. 좋은 분들과 한 번 맺은 인연을 계속 이어갈 수 있어서 기억에 남아요. 한살림의 경우는 저희가 만든 녹색연합의 소식지를 보시고 연락을 주셨어요. 그래서 지금은 한살림과의 장기적인 리뉴얼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에요. 사실 작업물을 보고 직접 디자이너에게 연락이 오는 경우가 아직 많이 없어요. 아무래도 저희가 만든 작품을 좋아해주시고 인연을 맺게 됐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탈북여성연대의 리플릿

 

그렇다면 사회적기업, 비영리 단체들과의 협업과정에서 아쉬운 점은 없으셨는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 모든 단체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디자인과 디자이너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태도가 좀 아쉬워요. 얼마 전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단체의 경쟁PT에 참가했는데 마침 추석연휴와 맞닿아 있었어요. 추석연휴 전날 PT를 진행했는데 그날 저녁, 연휴가 끝나는 바로 다음날 시안을 받을 수 있겠냐고 연락이 왔어요. 우리와 작업을 하기로 결정이 난 상황도 아니었고, 경쟁PT일 뿐인데 윗분이 보고 싶어 하신다고 디자인 시안까지 뽑아 달라는 거였어요. 우리를 협업의 대상이 아니라 말하자면 계약자, 을로 보는 거죠. 결정권은 우리에게 있으니까 자기 입맛대로 골라서 일을 하겠다는 건데 그런 식이라면 그게 대기업의 횡포와 다를 바가 없잖아요.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단체에서 인큐베이팅 상태에 있는 스튜디오에게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매우 안타깝죠.

 

사람들 인식 자체가 문화 전반적으로 올라간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디자인이 각광받고 중요성을 인정받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디자인을 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나 디자이너에 대한 인식과 가치는 현저히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 지점이 이런 문제의 원인이 된 것 같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일상의 실천’의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 마음껏, 계속 작업하고 싶어요. 현실적인 부분에서 이윤에 너무 허덕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사실 스튜디오가 더 이상 수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오면 저희는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거고, 그렇게 되면 ‘일상의 실천’의 목소리는 어느 지점에서 분명히 위축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지금으로서는 저희들이 하고 싶은 작업을 저희들의 목소리를 담아서 꾸준히 작업하는 것이 목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의미있는 디자인 작업을 하자'는 의지를 실천하고 있는 일상의 실천. 이 의미를 항상 간직하며 팀의 바람처럼 매일매일 일상을 실천하기를 바래본다.

 

 

글 사회연대은행 블로그기자단 김명준 / 사진 일상의실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