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변화 이야기

아트브릿지와 무한상상플러스의 만남

2014.06.02

공동체 라디오 <덤>의 ‘세계 유일의 봉제 미싱사 방송’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억척스러워 보이지만 가슴 뭉클한 사연을 간직한 50대 여성 미싱사. 색소를 쓰지 않는다는 맛집 <와글와글 족발>. 이소선 여사의 마지막 2년이 담긴 다큐멘터리 <어머니>에 등장하는 전태일 기념사업회가 있던 곳. 사회적기업 ‘아트브릿지’ 신현길 대표를 만나러 창신동의 복잡한 찻길을 따라 올라가며 떠오른 기억 속 장면들이다.

 

 

 

이어서 ‘아트브릿지’에 대한 궁금증을 몇 가지 가다듬어 보았다.

어떤 계기로, 어떤 능력자들이기에 공연이나 교육시장에서 통하는 뮤지엄플레이 <박물관은 살아 있다>, 다문화 이해교육 <아시아 문화탐험 연극> 같은 핵심 콘텐츠를 기획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확보할 수 있었을까?

<천상시계>(세종과 장영실의 꿈과 사랑 이야기)라는 대형 야외 고궁뮤지컬까지 선보일 정도인 회사가 왜 하필 창신동으로 들어갔을까?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들이 성장기에 흔히 겪는 민주성과 책임성을 기반으로 하는 조직관리의 어려움은 없을까?

 

 

“사회적 필요 때문에 콘텐츠가 만들어 졌습니다”. 창신동 언덕길에 자리 잡은 문화공간 <뭐든지 예술학교>에서 만난 신 대표의 대답이었다.

 

2005년 가을, 용산으로 옮겨 문을 연 국립중앙박물관의 어린이박물관 공연 기획자 출신으로 박물관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하게 된 그는 30분이라는 짦은 시간에 관람을 끝내는 아이들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결국 아이들이 박물관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고, 흥미 유발을 통해 제대로 된 체험학습의 단계로 아이들을 이끌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2009년에 첫 선을 보인 역사탐험연극 <박물관은 살아 있다 - 고구려 고분 탐험>을 비롯한 아트브릿지의 대표적인 공연체험 콘텐츠는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하지만 박물관 측은 그의 이런 시도를 적극 지지해주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독립된 사업주체로서 사회적 호응을 받으며 콘텐츠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타협하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박차고 나오다니, 그의 기업가정신이 제대로 작동한 결정적 순간이었다고 할까?

 

이후 관객 참여형 공연을 통해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역사를 알고, 더 지혜로워지자는 취지를 담은 <신라 서라벌 탐험>, <백제 예술 탐험> 같은 프로그램 개발이 이어졌다. 2010년에는 노동부 인증 사회적기업이 되었고, 인조와 정조를 연극으로 되살린 남한산성 이야기, 정약용과 실학, 이순신, 행주산성의 밥 할머니 같은 역사인물 체험연극도 차례차례 나왔다. 뮤지컬 <천상시계>를 공연한 2012년의 매출은 10억 원을 넘어섰다.

 

“대표적인 이순신 축제가 열리는 아산, 여수 같은 네 개 지역에서는 축제 때마다 저희가 만든 체험연극 <소년 이순신 무장을 꿈꾸다>를 매번 초청합니다. 다산(정약용)축제에는 2010년부터 5년째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고요. 그 축제를 담당하는 자치단체 공무원이 재미, 의미(콘셉트), 질 등 세 가지 요소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프로그램으로는 저희 것이 유일하다고 하더군요.” 신 대표의 겸손한 자랑이다.

 

“아시아문화 탐험 연극이 탄생하는 데는 지금 생각해보면 한편으론 재미나고 다른 한편으론 씁쓸한 계기가 작용했습니다. 논현정보도서관에서 60만 원 예산을 제시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겠냐고 물었어요. 심심찮게 겪는 일이지만 공공기관이나 기업체 사람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워요. 연극이란 게 그렇게 쉽게 후다닥 만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반드시 필요한 프로그램이라 생각했으니까 돈과 상관없이 제대로 만들었죠. 우리가 다문화사회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프로그램이니까요. 몽골 편, 베트남 편을 만들었고, 2011년에는 중국 편을 만들었습니다. 중국 편에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손오공, 삼장법사, 쿵후 펜더가 한꺼번에 등장합니다. 그러다보니 연극에 참여한 아이들이 참 재미있어하죠.” 제대로 된 역사 체험연극 하나를 이루기도 쉽지 않은데 다문화탐험 연극까지 만들어 내다니, 참 대단한 능력자들임에 틀림없다.

 

 

 

고민은 없을까?

“교육 프로그램이 안고 있는 수요의 가격 탄력성(가격 변화에 따른 수요의 변화 정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저희들의 숙제였죠.”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에서는 25만원을 쉽게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인데, 창신동 같은 데서는 꼭 필요한 프로그램임에도 5만원 받기도 힘들다는 거다.

돈이 가치판단의 중심이라면 돈을 따라 움직이면 되지만, 사회적 역할이 중심인 회사로서는 다른 해결책을 찾아야 했고, 이런 고민을 풀기위한 방안을 찾다보니 창신동으로 아예 들어오게 되었단다.

“저희가 창신동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거죠!”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함께 하는 것, 참여자들 일상의 삶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 그것이 근본적이고 지속가능한 변화를 불러오는 제대로 일하는 태도가 아니던가.

 

“창신동이 종로구 안에서 인구가 제일 많습니다. 심지어 초등학생 수는 전체 인구 대비 평균 비율 15.7퍼센트 보다 3.3퍼센트가 더 높습니다. 4인 이하 영세 사업장이 90퍼센트 이상이고요, 종로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40퍼센트 이상이 이곳에 삽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기업체 등의 외부 지원은 대체로 생필품에 치우쳐 있습니다. 고마운 일이긴 한데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제대로 해보겠다고 결심한 겁니다”.

 

창신동 사람들 마음 속에 제대로 자리 잡은 <뭐든지 도서관>을 통해서 동네 사람들을 만났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제대로 활용하고자 2013년 8월 <뭐든지 예술학교>를 세웠다.

의류봉제협동조합이나 창신동 부모 커뮤니티 같은 지역의 핵심 구성원들과의 소통은 순조로웠고, 지역사회 연계형 디자인 플랫폼을 안착시킨 러닝투런(<○○○간> ; 신윤예, 홍성재 공동대표) 같은 사회적기업가들과 협력하는 일은 늘 보람차다.

 

 

 

“<아트브릿지>와 공동체 라디오 <덤>이 협력해서 이곳에 곧 새로운 공간을 엽니다. 저희 단체의 본부를 아예 옮기는 거죠. 종로구청에서는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도심재생 선도지역 사업 예산으로 2백억 원을 확보했다고 하는데, 부디 길 넓히고 건물 짓고 하는 식의 사업은 절대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참여한 마을미디어 관련 청책(듣는 정책) 워크숍에서, 창신동 공동체 라디오 <덤>에 참여하고 있는 두 청소년이 했던 얘기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오직 음악만 들으면서 골방에서 오랫동안 외롭게 지내던 형이 <덤>을 만나서 너무 행복하다는 거예요. 그 형이 라디오 스튜디오에 와서 기타 연주도 하고 작곡한 곡을 들려주기도 해요. 우리 이야기에 사람들이 귀 기울여주는 경험을 하면서, 저희도 처음으로 꿈이란 게 생겼어요.”

그렇게 사람들에게 실현 가능한 꿈을 심어주고, 더구나 동네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함께 책임지는 사업이 좀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한국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창신동은 늘 어둡고 위험한 인물들이 사는 동네입니다. 그러다보니 동네 사람들은 많이 속상해합니다. 사실 이 지역은 풍부한 역사문화유산을 갖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암행어사의 출발지가 바로 여기였는데요.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왕의 교지를 열어보고 어느 지역으로 파견되는지를 알 수 있었답니다. 책 읽어주는 조선시대 선비 전기수가 실제로 이 지역에 살았고,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이 이 동네에서 태어났으며, 국민화가 박수근 화백의 집과 화실도 여기 있었죠. 1925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배우 양성소 ‘조선배우학교’가 바로 이곳 창신동에 세워졌습니다”.

지역사업의 성패는 그 지역이 갖고 있는 문화적 자원(자산)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있다고 하지 않던가. 발로 뛰는 지역의 역사 스토리 발굴 작업을 통해서, <선비 전기수> 같은 프로그램이 태어났고, 지역 아이들을 위한 <조선배우학교>가 세워졌다.

 

많을 때는 상근인력만 20명이나 될 정도였던 상황에서, 개성이 강한 구성원들과 함께 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 아니었냐고 묻자, 자리를 함께 한 양정선 실장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배우나 연출자로 같이 활동하던 구성원들이 문화예술교육 강사로 가게 되면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어렵더라도 예술의 가치와 거기서 얻는 보람을 생각하며 작업을 계속하자고 동료들을 설득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배우를 비롯한 많은 예술인들이 직원 신분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작품이 끊임없이 공연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천상시계> 같은 대규모 공연을 자주 하다보면 새로운 창작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 없어집니다. 예술가로서의 꿈과 생활인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겪다보니 스스로 회사를 떠나는 인력도 생깁니다.”

예술가들의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또 하나의 사업 목표를 지속적으로 실현해 내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신 대표에게 그와 회사의 다음 행보에 대해 물었다.

“최적화된 거점 공간에서 우리 회사의 대표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보여줘야, 관객이 꾸준하게 늘고 초청공연도 활발해집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상설공연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공공부문의 공연장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2011년에 부분적으로 실현해봤는데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기관장이 떠나니 없던 일이 되어버리더군요. 2015년에는 다른 방식으로 꼭 실현해보렵니다.”

 

“제 꿈은 저희 회사가 확실한 문화콘텐츠창작센터가 되는 것, 그리고 뮤지컬 <꼭두> 같은 우리 전통소재와 음악이 결합된 좋은 작품을 갖고 월드투어를 지속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있는데요, PMC(<난타>로 유명한 송승환 대표의 회사) 보다 더 오래가는 기업을 만드는 겁니다. 재미와 교육, 사회적의미를 함께 아우를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고 확신해요.”

돕고자 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기보다 남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작품이 중심이 되어 버리는 프로그램,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아닌 공급자를 위한 기획, 그래서 아마추어적이고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 되어 버리는 흔한 사례(윌리엄 드렌텔의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꾸는 법> 추천 글에서 인용)들을 보기 좋게 한 방 날리는 아트브릿지 구성원들. 이들의 꿈이 실현될 수 있어야 우리 모두의 삶이 좀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 신현길 (주)아트브릿지 대표(좌), 김혜준 무한상상플러스 대표(우)>

 

 

창조적인 인재들이 자신의 역량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혁신적이고 유연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경쟁력 높은 미래 창조도시의 기본 조건이라고 관련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생업에 바쁜 보호자를 둔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는 아이들에게 고른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만큼 우리 모두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마을을 토대로 서로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며 함께 어울리는 지구촌을 꿈꾸는 사람들 아트브릿지. 자칫 삭막할 수 있는 동네에 식물과 꽃이 가진 치유의 에너지를 전해주는 그림책+미술원예 융합 프로그램 <맘껏 그린 핑거>까지 선보인 그들의 활약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글/ (주)무한상상플러스 김혜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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