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변화 이야기

시니어들의 강화 우리마을 탐방기

2014.06.25

우리나라의 복지제도가 선별복지에서 보편복지로 전환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분야에서 제한적인 선별복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보니 소외된 지적장애인들의 복지환경은 열악하기만 한 가운데 소외받고 있는 지적장애인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때 성공회대 총장직을 역임하며, ‘커피 주교님’ ‘식권 할아버지’란 닉네임이 붙었고, 지금은 사회연대은행 이사장이자, 강화도 우리마을 촌장님이신 김성수(시몬) 주교님입니다.

 

<사회연대은행 이사장, 강화우리마을 촌장님으로 계신 성공회 김성수 주교님>

 

1964년 서른넷 늦은 나이에 신부가 된 그는 국내 첫 지적장애인 특수학교인 성베드로학교에서 교장으로 10년 넘게 근무했습니다.

1987년 성공회 서울교구장 시절엔 정동 주교좌성당에서 6·10 국민대회의 서막이 된 '4·13호헌 철폐를 위한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상계동 철거민촌에서 시작된 '나눔의 집' 운동, 외국인노동자 쉼터인 경기도 마석 '샬롬의 집' 등은 그가 교구장으로 있을 때 자리를 잡은 곳입니다.

8년간 성공회대 총장 재직 땐 '등록금을 밥값으로 낭비할 수 없다'며 판공비를 모두 반납하기도 했습니다.

 

6월 초 어느 날, KDB시니어브리지아카데미 6기 수강생들과 함께 김성수 주교님이 촌장으로 계신 강화도 우리마을 탐방길에 올랐습니다.

 

 

대한성공회 초대 관구장, 성공회대 총장 등을 지낸 김 주교님은 15년 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내놓고 이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장애인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친구'이고, 김 주교는 그저 '촌장' 아니면 '할아버지'로 불립니다.

그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 중에 ‘우리마을’ 부지를 제외한 나머지 4천 여 평은 동네 주민을 위한 공설운동장 부지로 기증했고, 나머지 일부 땅에는 ‘우리마을’에서 곧 퇴직하게 될 장애인을 위한 양로원을 지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는 가진 걸 모두 털었습니다. 개인재산 대부분을 기부했고, 65살 이후 주교로서 받는 월급도 따로 없습니다. ‘우리마을’ 안에 자리한 사택은, 건축가 사위가 설계하고 자녀들이 돈을 모아 지어줬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성품을 많이 본받은 김성수 주교님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적장애인의 복지에 열정을 바치고 있습니다.

 

강화도 우리 마을은 사회복지법인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사회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지적장애인 직업재활 시설입니다. 평균나이 35세인 지적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일구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입니다.

 

2000년 2월 17일 설립한 우리 마을은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고, 지금은 콩나물 재배와 단순 전자부품을 조립하는 작업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원생들은 일한만큼 급여를 받아 스스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산하는 콩나물 제품은 아이쿱생협과 풀무원에 전량 납품이 되고 있습니다.

 

이 시설 원장으로 있는 이대성(가브리엘) 신부는 우리 마을에서 재활생활을 하는 장애인이 만 58세가 되면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양로원을 계획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우리사회에 만연한 님비현상으로 인해 시설 확장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며 좀 더 많은 지적장애인들을 수용하여 그들이 사회에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마을로 정착시키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아름다운 삶의 현장을 직접 돌아본 후 우리가 만일 이렇게 아름답고 뜻있는 시설을 전국에 만들어 운영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 / 이부윤(KDB시니어두드림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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