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변화 이야기

KDB시니어브리지 아카데미 '논골신협' 현장 탐방기

2015.12.21

KDB시니어브리지 아카데미 교육 과정 중에 사회공헌활동 현장탐방이 포함되어 있는데 13기 교육생들이 ‘논골신협’을 방문하고 마을을 투어한다고 하여 동행했습니다.

 

종강 하루를 앞둔 날 교육생들이 모였습니다. 한 달 전 서로 서먹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김용덕 대표도 참석했습니다. 겨울철이지만 따뜻한 편이라 탐방하기에는 좋은 날씨였습니다.

 

지하철 5호선 행당역 1번 출구로 나와 100m쯤 직진하자 ‘사랑방 하늘나무’ 간판이 보였습니다. 사랑방 같은 지하실로 내려갔습니다. 빔프로젝트가 준비되어 있었고 장동성 성동주민회장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곧바로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되었습니다.

 

 

 ‘논골마을’은 행정구역상 행당동, 금호동, 하왕십리동이 겹치는 지역입니다. 도시화가 되기 전에 논이 있던 지역이란 뜻으로 ‘논골’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 지명을 살려 ‘논골사거리’가 존재합니다.

 

이 지역은 서울의 대표적인 산동네로 빈촌입니다. 패션의류의 메카 동대문이 가까워 여자들은 재봉 일을 하고 남자들은 건설 일용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부부가 모두 생업에 매달리다 보니 아이들 교육이 방치되었고, 그래서 탁아방, 공부방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가 1987년 무렵으로 이때부터 1995년까지를 ‘논골마을’ 초기로 본다고 했습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이 지역에선 주거권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조폭이 개입하여 강제 이주를 밀어붙였지만, 세입자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공동운동을 벌였습니다.

서울시 재개발 역사를 보면 재개발 후 원주민이 그대로 정착해서 사는 비율은 미미합니다. 원주민들은 멀리, 변두리로 밀려나야 하고 무엇보다 현재 생업을 이어 나가는 여건이 붕괴됩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차라리 그대로 두는 편을 택해 철거 후 머물 임시거주시설을 만들고 공동작업장, 신용협동조합 등을 만들었습니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는 주민협동 공동체 실현을 위한 기획단을 구성하여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경제적 측면으로 신용협동조합을 만들고, 생산적 측면으로 의류 생산 공동 작업장, 생활적 측면으로 생활협동조합 구판장을 만들었습니다.

신용협동조합은 IMF 금융위기 무렵인 1997년 11월 27일 극적으로 인가를 받았습니다. 당시 3억 원을 대출 받아 출자한 신용협동조합은 현재 자본금 27억 원 규모로 커졌습니다. 여기가 주민운동의 거점이자 교육, 홍보 소통이 이루어지는 중심입니다.

 

1999년부터 2008년까지는 임대아파트가 들어서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성동지역자활센터’를 만들어 공공일자리 확보와 서비스 확대에 매진했습니다. 이 당시 ‘국민기초생활보호법’이 생겨 국민은 누구나 기초생활을 보장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청장년은 일자리를 찾아야 했기에 직업을 알선해주는 ‘고용안정센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나마 거기에도 해당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전거 대여점, 북카페, 쌀 배달, 집수리 등을 하는 ‘자활지원센터’를 만들었습니다. 이때 ‘성동평화의집’, ‘주거복지센터’를 만들어 무료 한방 진료, 무료 이미용, 어르신 나들이 프로그램 등도 진행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단오맞이 주민 축제’ 등 행사도 이어갔습니다. 2007년에 한일 주민 교류 프로그램으로 ‘오사카부락 해방 동맹 아사카’와 교류한 데 이어 현재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 비슷한 환경을 가진 부락 등과 교류하고 있습니다.

2008년은 상호소통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생협 실천, 복지 문화, 교육 그리고 자치 활동으로 구의회 예산도 감시했습니다.

 

 

현재는 주민들이 출자하고 디자인한 ‘2011 사랑방’이 개소되어서 요리 강습, 영화 상영, 생일잔치, 동아리 활동, 풍물놀이 등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구청의 지원을 받아 만든 제 2사랑방도 벼룩시장 등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성동두레소비자생협’도 창립했습니다.

 

한시간 가량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질문이 잇달았습니다. 현재 운영상 애로 사항을 비롯해 다양한 질문과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결론은 도시 재개발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대로 보존하고 주민 생활수준을 개선하는 방법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논골마을’의 신협, 생협 등이 대부분 주민 자원봉사 차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글/강신영 기자(시니어 두드림기자단)

 

  • 존재하는 파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