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창업 이야기] ①사회적기업 육성사업 1년의 시간 - 창업팀 9기 ㈜그래잇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 제정 이후, 사회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회적기업 창업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와 이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사회적기업가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습니다. 사회연대은행에서는 사회적기업 창업 준비 단계에서부터 안정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걸쳐 도움이 되는 <세상을 바꾸는 창업 이야기>를 6회에 걸쳐 격월로 연재합니다. |
<세상을 바꾸는 창업 이야기>에서 첫 번째로 만나볼 ㈜그래잇은 지난 2019년 사회연대은행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참여한 9기 창업팀입니다.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은 혁신적인 사회적기업 창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예비 사회적기업가(팀)를 발굴해 창업에 필요한 전 과정을 약 1년간 지원합니다. ‘청년층의 부적절한 식습관 문제’를 사회적기업의 방식으로 풀기 위해 준비해온 지난 과정을 그래잇의 양승만 대표에게 들어보았습니다.
<(주) 그래잇 양승만 대표>
청년 건강문제 심각성 느끼며 사회적기업 창업에 눈 떠
“흡연과 음주를 꾸준히 해온 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세요. 아마 지인들은 그의 건강을 심각하게 걱정할 거예요. 흡연과 음주는 하지 않지만 매일 흰 쌀밥과 육류 위주의 식습관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2019년 4월 세계적 의학저널 논문에 따르면 부적절한 식습관 문제는 흡연과 음주만큼이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청년들은 경각심을 느끼지 못해요. 이것이 그래잇이 시작된 이유입니다.”
2년 전 영국 유학 생활 중 양승만 대표는 식습관에 의한 건강 문제의 중요성을 체감하는 사건을 겪게 됩니다.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최저식비로 생활을 하다가 면역장애로 한 달 이상 사경을 헤매게 된 것입니다. 누구보다 건강에 자신 있던 양승만 대표는 사건 이후 곧장 귀국을 결심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는 자신이 겪었던 건강 문제가 비단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영국에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송년회 모임에 가게 됐어요. 제 또래 20~30대 연령대가 모인 자리였는데, 모두 하나씩은 만성질환을 겪고 있다고 털어놓더라고요. 더 충격적인 건 이 문제를 마치 남의 일인 것 마냥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이었어요. 내가 겪은 건강 문제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고 인식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20~30대 청년, 그 중에서도 특히 혼자 생활하는 1인 가구의 경우 바람직하지 않은 식습관과 그에 따른 영양 불균형 문제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양승만 대표는 그 원인으로 청년 1인 가구의 열악한 조리 여건, 시간과 비용 부족, 국내 건강식 시장의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열악한 조리환경 탓에 제대로 된 요리를 하기도 어렵고, 시간과 돈 모두가 풍족하기 어려운 연령층이다 보니 간편식과 배달식을 선호하기 쉽습니다. 또 다이어트 식품과 건강기능 식품 시장으로 양분화 된 국내 건강식 시장도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렇듯 1인 가구 청년들이 당면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기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 바로 사회적기업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잇의 그래잇보울 도시락 (사진제공 : (주)그래잇)>
육성사업 1년, 사회적기업가로서 가능성을 판단한 시간
1인 가구 청년들의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한 그래잇의 시도는 맞춤형 영양제를 만드는 일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청년 1인 가구 영양 불균형과 관련된 다양한 국내외 자료 조사부터 시작해 서울 노량진과 종로 거리에 나가 1,000여 명의 청년을 직접 만나는 등 치밀한 준비 단계를 거쳤습니다.
“제품에 대한 준비를 어느 정도 마치고 생산을 앞둔 시기에 사회연대은행 창업팀 9기로 합류했어요. 지난해 3월쯤이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이네요. 사회적기업가로서 제대로 된 실적이나 성과는 없었지만, 준비 단계에서 보인 노력 덕분에 창업팀으로 선발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육성사업 자금지원을 통해 영양제 생산을 앞두고 있던 그래잇은 시장조사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잇의 주요 타겟인 20~30대 연령층에서 영양제에 대한 수요가 낮게 나타난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특정 영양 성분만을 보충하기 위해 영양제를 ‘선택’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국 그래잇의 소셜미션을 이루기 위한 아이템으로 영양제는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립니다.
“그 계기로 사업 아이템을 완전히 뒤엎게 됐어요. 계속 추진했으면 어느 정도 안정된 수익이 보장된 아이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미션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오랜 기간 준비해온 모든 걸 포기하는 일이 켤코 쉽지 않았어요. 일반 기업이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겠지만 그래잇은 돈만 쫓는 조직이 아니니까요. 방향을 틀어 우리의 미션을 달성하기 적합한 아이템을 계속해서 고민했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영양제’가 아닌 ‘식사’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작년 4월부터 다시 한번 제품 개발이 진행됐습니다. 그렇게 약 1년간 제품 개발과 홍보, 유통 등 영역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래잇의 모습을 갖춰갔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는 사회연대은행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의 지원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수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멘토링 지원입니다. 사회적기업가로서 첫 발을 내딛는 모든 순간이 불안정했는데, 그때마다 저를 다잡아준 건 멘토님이었어요. 전문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베일에 쌓인 저희 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자금지원도 큰 도움이 됐어요. 제품 생산을 위한 공간을 빌리고 다양한 식재료를 구입할 자본이 부족했는데, 자금지원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올해 예비 사회적기업 인증을 위해 준비 중인 그래잇은 한 단계 발전을 위해 ‘기초 체력’을 쌓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기초체력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이커머스 시장에서의 기초체력은 월 매출 5,000만 원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저희도 올해 6월까지 월매출 5,000만원을 목표로 잡고 있어요. 기초체력이 다져지면 우리만의 차별성과 다음 단계의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어요.”
<그래잇 활동 모습 (사진제공 : (주)그래잇)>
사업 초기단계에서 ‘사회적기업가로서 소신’이 가장 중요해
사회적기업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당연히 우여곡절과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양승만 대표는 사회적기업가로서 마음껏 시행착오를 겪기에 사회적기업 육성사업 과정은 더 없이 좋은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육성사업 과정을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도 있어요. 사회적기업가라는 강박이 컸던 것 같아요. 사회적기업가이니까 남들이 하지 않는 대단하고 특별한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사업을 진척시키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조금 더 어깨에 힘을 빼고 멀리 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100년의 시간이 걸린다면 1년은 찰나이니까요. 다음 기수 창업팀에게는 1년 동안 좀 더 마음껏 사업에 대한 로드맵을 그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긴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양승만 대표는 사회적기업 창업을 고려하는 이들과 꼭 나누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사회적기업을 준비하면서 제 자신에게 가장 많이 던졌던 질문이 있어요. ‘우리가 왜 사회적기업이야?’ 언론과 대중들은 흔히 사회적기업을 ‘착한 기업’ 혹은 ‘착한 경제’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매번 착할 수가 없더라고요. 사업을 하다 보면 비슷한 사업을 하는 누군가의 파이를 뺏을 수밖에 없잖아요. 결국 사회적기업가에게 중요한 요소는 선과 악이 아닌 소신이지 않을까요? 해결하려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전문성과 치열한 고민으로 무장한 소신 있는 사회적기업가로서, 여러분들을 현장에서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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