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움으로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는 자연을 담아냅니다 - 2024년 갤러리 프로젝트 정서인 작가 인터뷰

2024-01-31

매년 다양한 청년 작가들과 협업하고 있는 갤러리 프로젝트, 2024년 첫 번째 전시 <뜨거운 소멸 새로운 시작> 정서인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습니다. 정서인 작가는 ‘태워짐’이란 우연한 사건으로 자연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소멸하는 것에서 새로운 탄생을 발견하는 정서인 작가의 작품은 알파라운드에서 3월 7일까지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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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서인 작가(정서인 작가 제공 사진)

Q. 정서인 작가님, 안녕하세요. 작가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태워진 한지가 아주 얇게 겹겹이 붙여져 보여주는 효과와, ‘불’이라는 강렬한 소재가 한지와 만나 태워져 ‘소멸’하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새로운 ‘선’과 ‘이미지’가 나타나는 것에 흥미를 갖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자연이라는 곳은 생성과 소멸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변화의 공간입니다. 태워진 한지를 꼴라주 하는 방법을 통해 자연의 역동성과 다양한 자연 풍경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Q. 알파라운드 전시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브리즈 아트페어에서의 인연으로 알파라운드를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교육, 세미나 등 다양한 활동을 위해 알파라운드 공간에 방문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바쁜 일상을 보내는 청년들이 생활 속에서 예술작품을 접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전시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Q. 전시 제목이 ‘뜨거운 소멸 새로운 시작’인데요, 어떤 전시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의 조형 언어의 시작에는 한지와 불의 만남이 있습니다. 불을 태워 조형을 만드는 일은 찰나에 가까운 순간의 조절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 순간을 절묘하게 멈추어, 사라지기 직전에 태워진 종이조각, 불규칙한 형상의 태워진 선을 얻습니다. 종이조각들이 서로 이어지고 겹치면서 산과 바다를 이룹니다. 그렇게 태워져 남겨진 것에서 새로운 시작을 발견합니다. 
 ‘태우다, 태어나다’라는 커다란 주제로 작업을 해오면서 전시 공간에는 타고 남은 숯이 마치 꽃처럼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하고, 불에 그을린 한지가 산과 바다 같은 태초의 자연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합니다. 

Q. ‘태우는 것’을 작업 방식으로 가져온 계기가 있나요? 어떻게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동양화를 전공하며 매력적이었던 부분은 하나의 붓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선의 효과와 농담 변화였습니다. 특히, 색과 색, 면과 면이 만나서 형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필 선 자체가 물체의 형상을 이루는 수단이자 방법이 되는 것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태워져서 생기는 미묘하고 예민한 선의 변화들로 충분히 작업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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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 ‘제주바다’ (정서인 작가 제공 이미지)
(사진 오른쪽) ‘골산’ (정서인 작가 제공 이미지)


Q. 타고 그을린 종이가 겹겹이 쌓여, 산, 섬 등 자연의 형상을 이루는 방식이 흥미로웠습니다. 다른 사물도 아니고 ‘자연’을 담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자연은 끊임없이 무엇인가가 죽고 사라지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새롭게 생명이 시작되는 변화무쌍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는 어제와 다릅니다. 늘 새로운 일이 생기고, 오늘의 일을 마치면 내일의 할 일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것이 쌓여 현재를 만들어 냅니다. 태워진 한지가 겹겹이 쌓여 풍경을 만들어 내듯이 말입니다. 한지의 레이어가 교차하듯이, 산을 바라보면서 바라본 사람마다의 경험과 숱한 생각들이 포개어져 쌓이고 쌓입니다.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오늘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실적이지 않은 추상화된 방식으로 자연을 재현하게 되었고요.

Q. 작업할 때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요?
직접 본 풍경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풍경을 바라보았을 때 떠올랐던 감정, 그 풍경이 주는 아우라를 떠올리고 배경색을 결정하며 작업을 시작합니다. 작업 중에 <제주바다>가 있는데, 제주도에서 바다를 바라보았을 때, 투명한 바다의 색감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태운 한지를 붙이면서 일부러 투명한 겹침을 강조했는데, 한지를 많이 겹칠수록 바위나 섬은 선명하게 보이고, 적게 겹칠수록 바다가 더욱 투명해 보입니다. 이처럼 자연에서 받은 영감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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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알파라운드에 전시된 정서인 작가의 작품


Q. 작품을 접한 관객들의 다양한 반응을 접하셨을 것 같은데요, 작가님에게 특별히 반가운, 인상적인 반응은 어떤 것이 있었나요? 
제 작품은 멀리서 보면 한국화 특유의 잔잔한 자연 풍경을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작품에 가까이 다가올수록 태운 종이조각들이 이어지고 겹치면서 산과 바다를 만들어 냄을 발견하게 됩니다. 붓이 아닌 그을린 한지 종이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아차리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데요, 이를 알아차리게 된 관객들이 대부분 신기해하고 ‘정말 잘 태우셨네’라고 말합니다. ‘태움’이 거친 느낌이 아닌, 부드럽고 섬세한 느낌을 만들어 낸 것에 흥미를 보이며 작업 과정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해 뜰 녘 푸른 하늘 아래 물에 비치는 노란빛 호수를 표현한 <석가산>이란 작품이 있는데, 어떤 관람객은 한낮에 햇빛이 비치는 느낌이라고 하시고, 어떤 분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국기가 떠오른다고 하셨는데, 작품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이 재미있었습니다. 

Q. 앞으로 계획하는 작업과 활동이 궁금합니다?
최근에는 ‘불로 태운다’는 행위에 집중해 태워진 형상 자체가 드러나 무언가가 되는 입체적인 사물들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자연의 실경을 재현하고 표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고 연구하는 작가로 성장하여 관객과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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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작업 중인 정서인 작가(정서인 작가 제공 사진)


Q. 마지막으로 알파라운드에서 작가님 작품을 감상하는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청년들인 만큼 생각도, 고민도, 꿈꾸는 모습도 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열정적인 시기인 만큼 다양한 감정도 생각도 들겠지요. 그러다 문뜩 시선을 돌렸을 때 자연을 담은 제 작품을 보면서 잠시나마 그 생각을 환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자연도 시간이 쌓여 오늘의 풍경을 만들었듯이, 지금의 시간이 쌓여 멋진 미래의 모습이 될 나를 생각하면서 편하게 작품을 감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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